SK에너지 교육훈련팀 박봉희(오른쪽) 부장이 생산현장에서 동료, 후배들과 함께 공정작업을 검토하고 있다.

색·냄새로 종류 맞추는 '윤활유의 달인'
27년간 공정개선안 반영 200건 넘어
품질분임조 경진대회 13년 연속 '금' 꿈



SK에너지 울산공장 교육훈련팀의 박봉희(52) 부장. 박 부장은 1981년 당시 유공(SK에너지 전신)에 입사한 이래 지난 20여년 동안 현장 근로자로 일하면서 끊임없는 연구와 자기계발로 지난 96년 사내 최초로 품질명장의 칭호를 받은 입지적인 인물이다.

20여년간 윤활유 생산부문에서 근무한 그의 이력은 '도전'과 '혁신' 두 단어로 요약된다.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공정개선을 제안, 반영된 건수만 2000건이 넘고, 공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홀로 해결한 것도 50여건에 이른다. 금전적 가치로 따지면 수십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최고가 되겠다는 것은 꿈이 아닌 약속

"최고의 기능인이 되겠다는 것은 꿈이나 희망이 아닌 자신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어려운 과제를 만날 때마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자고 수십번, 수백번 다짐했습니다."

박 부장의 학력은 인문계 고교 졸업이 전부다. 유명 공대나 공고를 나온 것도 아니지만 회사 사람들은 그를 사내 최고 기능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20여년간 윤활유 생산부문에서 근무하면서 윤활유에 관한 한 전국에서 그만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색깔과 냄새만으로 윤활유의 종류를 정확히 구분해내고, 윤활유를 한컵 흘려보는 것만으로도 점도가 합격인지 여부를 눈으로 알아낸다. 이른바 윤활유의 달인이 된 것이다.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땀과 눈물이 있었다. 지난 98년 대형 기계설비에 쓰이는 무공해 극압그리스를 개발할 때의 일이다.

일본 기술과 제휴해 공동으로 개발을 시도했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윤활기유에 첨가제인 산화아연 가루를 섞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일본 기술진마저 포기하고 떠났다. 그러나 박 부장은 물러날 수 없었다. 홀로 자체 개발에 나서 수백번의 실험과 실패를 반복한 끝에 결국 문제를 해결했다.

이 밖에도 20ℓ윤활유 용기를 개선해 공간 활용과 업무효율을 높이고, '유베이스'라는 신제품을 개발해 세계 고급 윤활기유 시장의 60%를 장악하게 된 것도 모두 그가 해낸 일이다.

초창기 주변 동료, 후배들은 이런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혼자 너무 튀는 것 아니냐. 그냥 하던대로 하면 되지. 무엇때문에 나서서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 입사 후 유별나게 구는 저의 행동이 못마땅했던지 3년동안 동료들 사이에서 소위 '왕따'로 지냈습니다. 당시에는 참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동료들도 이런 그를 차츰 이해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안된다고 손사래를 칠 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힘든 삶을 감내하며, 한 발 한 발 꿋꿋이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기름밥 27년, 남은 삶도 회사와 함께

박 부장은 요즘 윤활유에서 한단계 나아가 울산공장 전체의 생산공정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품질향상은 물론 원가 저감 방안, 생산기간 단축 등 전체 현장에서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동안 수없는 성과를 달성한 박 부장이지만 아직도 남은 할 일이 많다.

우선 SK에너지가 지난해까지 12년 연속 이룩한 품질분임조 경진대회 금상 수상을 올해도 따내고 싶은 것이 그의 욕심(?)이다.

"품질분임조 경진대회에서 처음으로 금상을 수상했을 때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한 번 따니까 두번, 세번 계속 욕심이 나더군요. 올해 13년 연속 금상을 수상하는 것을 보는 것이 제 욕심입니다."

너무 회사일만 이야기한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목표나 꿈을 물어봤다. 하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 현장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지금 있는 이 곳도 만족스럽지만 기름밥 20년 먹은 사람은 현장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회사가 결정할 문제죠."

사람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하는 그에게 회사일 이외 다른 관심은 별로 없어 보였다. 권병석기자 bsk730@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