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극복한 삶의 명장 - 품질명장, 김병희            

그는 오늘도 가장 먼저 사무실의 문을 연다. 30년 가까운 회사 생활, 이제 모든 일이 여유롭고, 직장 생활이 느긋해질 법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할일이 많다.

입사 이래 지금까지 삼십년 가까운 세월을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아직도 그의 눈에 띄는 많은 것들은 모두 다 새로운 일거리로 다가온다. 김병희 팀장은 오늘의 일정을 점검하고, 먼저 할 일과 나중 해도 되는 일, 새롭게 지시할 일과 결과를 확인해 할 일을 구분해 놓는다.

1976년, 그가 처음 입사하던 때를 돌이켜보면, 지금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장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당시만 해도 조선산업은 노동집약 산업의 대명사로 통했다.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근로자의 노동 강도는 그 어느 곳보다 높았고, 김병희 팀장 역시 처음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해 좌절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공정과 설비가 첨단화․자동화되어 노동 강도는 낮아지고 업무 효율은 높아졌다. 지금과 같은 작업환경이 조성되기까지 누구보다 많은 열정과 노력을 쏟은 사람이 바로 김병희 명장이다. 지금은 현장을 관리 감독하는 업무를 맡고 있지만, 그 역시 시작은 바로 이곳 현장에서부터였다.

현장작업을 하면서, 업무효율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어떤 것인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작업장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체험하고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관리자 가운데 한사람이다. 오늘도 김병희 팀장은 현장 점검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현장의 작업자들 역시 기계와 설비에 대한 문제나 의문점이 생길 때마다 김병희 명장에게 물어온다.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들이 겪지 않도록 그 역시 잔소리꾼을 자처하고 나선다.

작업장을 둘러보던 김병희 명장의 시선이 한 곳으로 가 멈춘다. 작업하는 모습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요모조모 작업 공정을 살펴본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일을 하는 김병희 명장. 그러나, 한번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시 처음부터 일이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힘든 고비가 있었고, 그 고비를 견디지 못해 사표를 던졌던 적도 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그는 이곳을 자신의 마지막 직장으로 굳게 믿게 됐다. 그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기도 한 이곳은 김병희 팀명에게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준 곳이었다.

공고 졸업 후 입사, 5일만의 퇴사, 재입사 기회

1976년,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당시 현대조선이던 이곳에 입사하게 된다. 부푼 꿈과 기대를 안고 첫 발을 내딛은 직장이었지만, 사회초년생에게 닥친 현실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밤 9시 30분까지의 현장 일을 견디지 못하고 5일을 근무한 후, 직장을 나오게 되었다.

첫 직장에서 좌절했다는 자괴감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그때부터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회사에서 재입사를 권유해 온 것이다. 지금 들어가면 죽어서 나간다고 생각하고 재입사를 했다. 다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는 그때부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직장생활을 해나갔다.

직장생활에 재미를 느껴야 하는데 마침 품질분임조 활동이 도입되었다. 1977년부터 시작된 분임조 활동을 통해 김병희 명장은 현장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개선해 나갔다. 적극적인 분임조 활동으로 1988년 그는 현대중공업 최연소 팀장으로 승진하기에 이른다.

1977년 이후 지금까지 분임조 활동을 통해 그가 펼친 개선활동은 모두 5,300여건에 이른다. 그 가운데 하나가, 20여 년 동안 작업장을 점거하고 있던 나무받침목을 철거하고 대신 수레를 고안해 사용한 것이다.

처음에는 고정관념 때문에 적체공간이 없어지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여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를 먼저 도입하여 실험한 결과 그 편리함을 알게 되어 전체 작업장을 바꾸게 되었다. 이 개선 활동의 결과는 공장의 사용면적은 30% 이상 늘고 3,000만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작업공정에서 발생하는 무거운 칩을 처리하기 위해 쓰레받기로 담아 치웠던 작업 방식을 덤프차 원리를 이용한 칩카를 고안해 바꾸기도 했다. 떨어져 나온 칩은 바퀴 달린 칩카로 모여지고, 이 칩카를 이동해 칩 통에 간단히 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불필요한 노동이 줄고, 작업환경은 한층 쾌적해 졌다.

그의 개선활동 가운데는 특허로 출원된 것도 있다. LNG선에 가스를 주입하고 인출하는‘돔노즐’이라는 부품은 공정상 가운데 부분을 도려내야 한다. 그는 도려내어 버려지는 이 부분을 손상 없이 도려내기 위한 새로운 장비를 고안하였고, 그 결과로 도려낸 자재를 재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장비의 고안으로 LNG선 한 척 당 1억 여 원의 절감효과를 얻게 되었다.

작업현장의 모든 공정이, 김병희 명장에게는 아직도 개선해야할 과제들이다. 현장 개선은 작업자 전체의 혜택으로 돌아간다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매 순간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온 김병희 명장. 풋내기 기계공이었던 청년, 김병희는 1991년 입사 15년 만에 대한민국 품질명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품질명장이라는 이름은 그에게 있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인생의 명장과도 같은 의미였다.

품질보증 인증서가 된 품질명장 김병희의 사인

외국에서 전량 수입한 자재는 워낙에 고가여서 불량이 발생하면 전체공정에 엄청난 차질이 발생한다. 따라서 선주 선급의 까다로운 검사가 따른다. 그러나, 그동안 철저한 불량관리로 능력을 인정받은 김병희 명장은 자신의 사인으로 제품을 인정받게 된다. 품질명장 김병희의 사인이 품질을 보증하는 인증서가 되는 셈이다.

그가 품질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업장의 안전이다. 지금까지 김병희 명장이 추진해온 제안활동과 개선활동은 품질 향상과 함께 작업환경을 개선하는데 큰 비중을 둔 것이 많았다. 즉, 근로자가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작업하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었다.

김 명장 자신이, 현장 작업을 통해 작업의 고됨과 어려움을 체득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람을 중심에 둔 김병희 명장의 이러한 면모는 품질명장이기에 앞서 편안한 동료이자 따뜻한 선후배로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가장 먼저 출근했던 김병희 명장이 업무가 끝나고 텅 빈 작업장의 사무실에 가장 늦은 시간까지 남아있다. 그의 평균 퇴근 시간은 오후 8시여서, 하루 12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낸다. 퇴근 후, 회사를 나선 그가 향하는 곳은 그의 집이 아니다. 몸이 아파 결근한 동료의 병문안을 온 것이다.

바쁜 일과 중에도 김병희 명장은 주위 동료들을 잊지 않고 챙긴다. 일이 중요한 이상으로, 그에게는 사람도 소중한 것이다. 꿋꿋하게 한 길을 걸어온 김병희 명장. 그 우직함이 그를 여기까지 이르게 했다. 하지만, 그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삶은 매순간 도전해야 하는 진행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