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웰컴 투 소록도(두번째 이야기)
어제는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안성에서,거제에서 단 두번을 만났을 뿐인데도 마치 옛 고향 친구를 만난듯 서로간의 진솔한 애기들을 주고 받으면서 참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세월이 흘러갈수록명장으로서 사회적 지위나 신분은 올라갔어도 마음만은 초심
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았다.
한번 사귄 벗들 영원히 오래동안 기역하고 싶다.
한 번 맺은 깊은 인연 운명처럼 이고 지고 싶다.
아무리 세상이 재빠르게 약아지고,좁아진다해도
한번 맺은 인연은 소록도 황금 편백나무에 대롱 대롱
매달아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비교적 어제 많이 걷고 움직여서 인지 다른 일행들 보다 일찍 꿈나라로 직행,
깊이 잠이 들었던지 첫번째 기상 나팔소리 동해물과 백두산이~(사실 이대목에 이회장이 대비 마마한테 졸라 혼났다고
잘 좀 써달라고 청탁을 했지만...
이왕에 비리 하나더, 엄양희 명장 말을 빌리면 아침에 라면2개 끓이더니 다른
사람 침넘어가든지 말든지 혼자 모두해 치우더라고..)에 기상.어제 봄을 재촉하
는 단비가 내려서 인지 아침 공기가 너무나 깨끗하였다.어제는 화합의 시간이었다면 오늘은 소록도를 좀더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 될 것 이다.
아름다운 섬 소록도
여명이 밝아오기 전 영빈관의 약 300m 앞에 1935년에 만들어 졌다는 신사에
가 보았다.신사는 일본 황실의 조상이나 신 또는 국가에 공로가 큰사람을 모신
사당을 말한다.
우리 민족으로서는 치욕의 건물이지만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다. 선회장
말을 빌리자면 철근 콘크리트로 너무나 견고하게 지어져 있어 제거 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더 밑으로 내려가니 빨간 우체통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그 옛날 소록도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신수단으로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한 스러움 그리고
그리운 애환의 사연들로 가득했을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몇 분은 둘러앉아 동양화 공부를 열심히 하고있다.빈 깡통이 소리가 크듯,김인배 명장님은 영 신통찮은 모양이다.바닷가 산책을 하자는 이 고문의 제안에 선뜻
따라 나섰다.
약 100M아래로 내려가다보니 울창한 송림사이로 해안가를 만날 수 있었다.
소록도에서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소록도의 놀랍도록 빼어난 풍치는 내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섬 주위는
단애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운 모래가 그득히 널린 백사장과 끝없이 맑은 바닷물이 들고나는것이 흡사
명사십리 바닷가를 연상시킨다.
저 건너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 레슬러 김일의 고향이라는 거금도의 불빛
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 온다.
또한 지금은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차로 바로 들어 올 수 있지만 전에는 녹동 항구
에서 배를 타고 들어 왔다.
그녹동항이 손을 뻣으면 닿을듯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때 묻지 않는 땅,
깨끗한 소록도는 천혜의 아름다움 을 지닌 곳이라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얽힌 나환자들의 애환,남모르게 뿌려진 피 눈물들은 다 지워
졌는지 평화 스럽기만 하다.
가슴저린'보리피리'
소록도는 공무원,병원직원,그리고 그 가족들이 사는 곳과(우리가 묵었던 영빈관
도 포함)약 650여명의 한센 인들이 거주하는 마을로 나뉘어져 있다.
우리 일행을 실은 차는 소록도 한센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을 꼬불 꼬불 돌아
소록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인 소록도 국립병원 앞에 내려 놓았다.소록도
병원은 초기에는'자혜의원'이라는 간판으로 문을 열었다 한다.
병원 뒤쪽으로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으로 유명한 소록도 중앙
공원이 나온다.
일제시대때소록도를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 요양 시설로 만들겠다며
1936년부터 약 3년동안 연 인원 6만 여명의 환자들을 동원하여 강제노역을
시켰다고 한다.
손목 아래가 없고, 무릎아래가 없는 몸으로 고된 노역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어쨋거나 중앙공원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렵도록 잘 가꾸어진 정원되어
있었다.
향나무와 황금 측백나무,등나무,동백나무,팔손이 나무등이 서로 다투듯 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중앙공원에는 구라탑,다미산공적비,세마공적비,한하운 시비등이 세워져 있었으
며나병 시인 한하운님의 시'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세상과 철저히 차단되고
소외된 자신의 참담한 심정이 한편의 시비에 담겨져 있었다.
보리피리 불며/봄 언덕/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꽃청산/어린대 그리워/ㅍ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인환의 거리/인간사 그리워/ㅍ-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방량의 기산하/눈물의 언덕을 지나/피-리닐니리
한하운《보리피리》
소록도는 원래 큰 돌이 없는 황토 뿐인 섬 이었다고 한다.보리피리 시비를 세우기
위해 완도에서 소록도로 가져오는데 2년 8개월이 걸렸고.돌을 옮기다일본 관리
들에게 맞아 죽기도 했다고 한다.
한센인들에게 한하운 시인은 자신들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따듯하게 보듬어 주었
던 정신적인 지주 였던 셈이다.
아픈 몸으로 목숨을 걸고 시비를 세운 것을 보면...
보리피리 계단을 내려오니'한센병은 낫는다'는문구가 적힌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중앙공원을 둘러보고 내려오다 길 위에 소록도 병원의 역사와 나병인들의
애환을 엿 볼 수 있는 생활자료관을 둘러보았다.길 아래 빨간 벽돌로 된 건물에는
환자들을 감금하고 강제로 정관 수술을 했던'강금실'과 '단종대'가 있었다.
감금실에 갇혔다가 단종 수술을 받은 어느 환자의 가슴저린 한편의 시가 벽에
걸려 있었다.
그 엣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여 누워 있노라/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내 수술대 위에 가물 거린다/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내 국부에 닿을 때/모래 알 처럼 번성하라던/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지하 히포크라테스는/오늘도
통곡한다.
잔혹했던 당시를 상상해 본다.배가 부르고 즐거운 사람에게는 새소리가 노래로
들릴 것이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사람에게는 슬픈 울음으로 들릴 것이다.
문둥이들은 어릴적 우리에게는 거지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거지였다.어린 아이의
간을 빼 먹는다는등 온갖 소문으로 그들을 배척하고 괴롭혀 왔다.우리의 잘못된
편견과 오해속에 서러움과 힘겨운 삶을살아야 했던 한센인들, 이 질병은 전염병
이라고 알려져있다.
나병`이나 `문둥병`이라는 말보다 한센인으로 부르는것이 예의이다.지금이라도
이들을 만나면 반갑게 먼저 인사를 나누자!
잘 가꾸어지고 다듬어져 있는 중앙공원을 내려오면서 이런저런 화두를
중얼거려 본다.
소록도는 우리말로'작은 사슴섬'이라는 낭만이 깃든 이름이다.그 아름다운
이름은 누가 지었는가?
질병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것인가?

▲ 낙지 삼매경

▲ 산사

▲ 소록도 우체국

▲ 해수욕장 건너 녹동항의 불빛

▲ 해수욕장 산책길에 이호전,변성현,엄양희,박재희 명장 의 담소

▲ 영빈관 뒤뜰의 일본식 정원

▲ 중앙공원 입구

▲ 화합의 건배
박봉상 경상남도 협의회 명장님 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