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문화탐방
매년 있는 고등학교 동기모임을 1달 전, 완도 보길도 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모처럼 남해안 여행에 들떠있는 아내가 2주전부터 여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기모임이 정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품질명장협회의 킥오프 행사와 겹치게 되었다.
그것이 나에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고심 끝에 먼저 계획 된 동기모임을 가기로 결정하고, 협회 총괄단장께 불참을 통보한 상태다. 이틀을 남기고 친구 두 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이 불가능하여 취소되었다.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협회 행사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지만 아내는 이미 마음은 해남 땅끝과 보길도에 가있었다.
부인을 실망을 시킬 수 없었다. 이미 계획하고 준비 했던 것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내에게는 행사가 취소되었다고 알리지 않았다. 아내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29일 새벽에 일어나 06시 30분에 짐을 꾸리고 승용차에 올랐다. 창원시내를 지나 남해고속도를 1시간쯤 달려 하동을지나 광양쯤 달려가고 있을 때 였다. 아내에게 행사가 취소 되었다고 말했다. 금번 여행은 우리 둘만의 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에 아내는 실망스런 눈빛을 띄었다. 그것도 잠시 둘 만의 여행에 들뜬 목소리로 잘 되었다고 말한다.
4시간 정도 달려서 우리는 해남 대흥사 입구에 들어섰다. 이른 시간이라 여행객들이 몇 사람이 되지 않는다.
대흥사에 들어가는 숲길의 터널과 굽이굽이 계곡을 지났다. 여기저기 세월의 이끼가 묻어있는 그 웅장함이 느껴지는 절에 10시쯤에 도착했다. 두륜산 품에 자리잡은 대흥사이다.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정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경내를 거닐 때면 어머님 품과 같은 평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흥사는 임진왜란의 승병장이었던 서산대사 이후로 규모가 커졌다. 서산대사는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요. 만세가 되도록 파괴됨이 없는 곳” 이라고 말했다.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명필이 직접 써 조선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다. 대흥사는 빼어난 절경과 함께 호국불교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량이다.
이튿날이다. 가고 싶은 땅 보길도였다. 보길도를 향해 나는 지금 땅끝 항에 서있다.
배를 타기 전에 06:20분에 도착했다. 벌써 배를 타기 위해 차들과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들은 5시부터 기다렸다고 한다.
땅끝, 땅끝이라, 이곳이 끝이런가 새로운 것을 향하는 시작이런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시작과 끝의 빈번한 반복을 하게 된다. 무엇이 끝이고 무엇의 시작인가?
6시30분쯤 차를 선적하라는 신호와 함께 우리 차는 배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드디어 보길도에 발을 디뎠다. 야호 심호흡을 크게 하고 호기심과 큰 기대로 피로도 잊었다.
차를 뒤로하고 2층 여객실로 짐을 챙겨 오른다. 배는 고산을 향기를 찾아 떠난다.
30분쯤 지났을까 노화(선양)항에 도착했다. 여기가 보길도 말로만 듣던 고산이 머물던 보길도에 발을 내렸다.
작게만 느껴졌던 섬이 생각보다 큰 육지였다. 들판과 산을 지나고 읍내를 지나 차로 20분 한참을 달리니 보길대교가 보였다. 다리를 지나니 부용동의 고산 윤선도님께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 곳 보길도는 고산이 제주도에 귀향을 가 있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때 고산은 뜻 있는 사람들 500여 명을 데리고 한양으로 향하던 중 인조임금의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소식을 듣고 발길을 돌려 하향하던 중에 보길도에 잠시 쉬어가려 들렀다.
풍류와 풍수에 능한 그가 살아있는 보길도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이 곳에 머무른 것이
17년 정도가 지났다. 고산은 처음 보길도에 들어와 거처인 낙서재와 곡우당을 짓고 낙서재가 있는 골짜기를 부용동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는 그 곳이 사방의 여러 산들이 고을을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어 그 모양이 마치 막 피는 연꽃과 같아서 부용동이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부용동 동구에 다다르고, 이곳 보길초등학교 옆에 세연정이 있다. 세연정은 우리 나라 정원의 효시인 셈이라 한다. 마치 정원의 호수에서 시조와 어우러진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세연(洗然)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을 가졌다. 기능으로 보면 놀이의 장소이다. 선비다운 세계관이 담긴 이름이다.
세연정은 부용동 정원에서도 가장 공들여 꾸며진 곳이며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는 듯하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점점이 드러나 있다. 자연적인 곡선미와 축대로 돌린 회수담의 인공미가 서로 대비되면서도 잘 어울린다. 회수담은 무희가 춤을 추고 악사가 풍악을 울리던 무대로 쓰이던 곳이다.
연못 주변에는 세월이 많이 흐른 소나무와 차나무, 녹나무, 동백나무 등 상록수가 우거져 있었다. 연못 안에는 여름철에서 늦가을까지 귀여운 노란 꽃이 피는 개구리연이 퍼져 있다. 원래 있던 세연정은 무너졌으나 1993년에 옛 주춧돌 위에 새로운 정자를 복원한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자연을 즐길 줄 알았던 넉넉하고 멋을 아는 선비 그는 신선도 부럽지 않았음을 알았다. 바로 동천석실을 찾아가면서 들을 수 있었던 또 한 번의 놀라움이었다. 동천석실은 부용동 안산의 산꼭대기에 있다.
고산의 한시에는 신선처럼 살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유교적인 생각이 짙게 베어 있다. 격자봉과 혁희대가 있다. '격자봉'이라는 시에는 중국 유학자 주자처럼 은둔하려는 마음이 드러나 있다. '혁희대'라는 시에는 임금을 사모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전체적으로 유교적인 생각이 시의 주제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고산은 자연의 품에 들어 신선처럼 살고자 했고 아울러 자연을 통해 예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적 교훈을 찾고자 한 것이다.
바로 이 곳 동천석실에서...고산의 예술 혼을 빛나게 했던 그 아름답고도 절묘한 풍경을 뒤로하고 탐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예송리로 달린다. 중리 해수욕장을 지나쳐 예송리 해변에 시선을 던진다. 해변은 검은 진주를 깔아 놓은 것처럼 작고 예쁜 돌들이 모래알처럼 모여 해변을 이루고 있었고, 문화재로 지정된 방풍림들이 그 해변과 도로 사이에 울창하게 어우러져 있어 장관이었다. 조용한 아녀자의 모습처럼 바다에 보길도 옆 이름 모를 섬들도 한 폭의 수묵화를 지어내고 있었다. 보길도는 어디를 가나 동백과 쉽게 만날 수 있어 자연휴양림에 들어 온 느낌이다.
보옥리 땅끝을 찾아 가 보았다. 동백림이 가로수처럼 늘어서서 우리들을 환영해 주는 듯
하여 마음이 흡족하였다. 점심 때가 지났는데도 멋진 풍경에 푹 빠져 배가 고픈지 몰랐다. 너무나도 멋진 보길도를 뒤로하고 땅끝으로 나왔다.
서둘러 귀가하는 길에 강진에 있는 이제 마지막 답사는 영랑 생가를 들리게 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학창 시절에 누구라도 외우지 않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슬픔의 서정시였다.
바로 그 시의 작가인 영랑 선생의 생가가 강진읍에 위치하고 있었다.
계절인지라 모란 꽃은 다지고 늦게 찾아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1930년대 초기 시문학파의 일원으로 북에 소월(素月), 남에 영랑이라 하리만큼 호각을 이룬 우리나라 서정시단의 큰 별 김윤식(金允植)선생은 강진읍 남성리 탑동에서 1903년 1월 16일(양력) 부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랑선생은 강진읍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휘문의숙을 거쳐 일본 동경 청산학원 영문과를 수학한 후 용아 박용철, 정지용,등과 함께<시문학>
동인지를 펴내면서 시작(詩作)활동에 전념하여”모란이 피기까지는” “언덕에 바로 누워”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등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주옥같은 81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그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한 민족주의자로서 애국적 정열과 민족의 기상을 문학을 통해서 영롱한 서정의 극치로 승화시켰다. 그의 작품들은 우리 근대시사(詩史)에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영랑 생가는 여러 차례 전매(轉賣)되어 원형이 일부 변형되었으나 1985년 12월에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원형대로 복원되어 유지 관리 해오고 있었다.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릴 테요...모란이 피기까지...
시인의 마당에는 모란이 다 시들어져 있었다. 큰 아쉬움이 남았다. 모란이 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내년에는 모란이 활짝 필 5월 달을 다시 기약하며 발길을 돌린다.
혼자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곳이기에 이 글을 남기게 되었다. 톱니바퀴 같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자연의 원기가 숨쉬는 이 곳에 가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김용희 명장 작성
세연정 전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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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재
대흥사 입구
땅끝에 서다
세연지 전경
김영랑 시인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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