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과 항해사
김양규
어느 항해사가 술을 먹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선장이 그걸 보고 일지(日誌)에 적었다. 항해사가 술을 먹고 자고 있더라고.
다음날 항해사가 선장이 쓴 일지를 보고 따졌다.
그날 나는 비번이었고, 그래서 술을 마시고 좀 잤기로 그걸 그렇게 적을 수 있느냐고.
선장이 말했다.
당신이 그날 술을 먹고 취해서 잔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고, 나는 사실을 적었을 뿐이라고 했다.
며칠 후 항해사가 일지에 적었다.
‘오늘은 선장이 술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음날도 이렇게 기록했다.
‘오늘도 선장이 술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또 일지에 기록했다.
‘오늘도 선장이 술을 먹지 않았다.’
우연히 그 일지를 본 선장이 다그쳤다. 내가 언제 술을 마시더냐고,
난 술을 마신 적이 없다고. 그러자 항해사는 말했다.
당신이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서 사실대로 적었을 뿐이라고,
내 말이 맞지 않느냐고 했다.
드디어 배가 항구에 도착했고, 선장은 선장일지를, 항해사는 항해일지를 제출했다.
결과는 둘 다 모가지였다.
사랑이 없는 사회, 서로의 허물만 들추어내려는 세태를 꼬집는 일화다.
그 결과는 죽음이라는 것, 모두 함께 망하는 것이란 엄연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든다. ♣
새해 아침 짧게 인사드리고 갑니다. 삼성sdi 엄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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